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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골리앗. 머리로 하는 싸움을 몸으로 하는 싸움이 이길 수 없다는 얘길 전달해 주는 이 이야기를 나는 좋아했다. 주변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마치 세상에 없는 동화로 여겼기 때문이다. 뭔가 나만 알고 있는 보물같은 것은 느낌을 느끼게 했다. 내게 이런 기분은 병적인 것일 수도 있겠다만, 어쩌겠는가 세상은 병들었고 어떠한 희망적인 얘기도 믿어주려 하지 않고 게으르고 욕하고 질투하고 모른척하고 인정해주지 않으니까 이런 곳에 내가 재미를 두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이렇게 얘기할 순 없을테니까. 나는 원래 이런 이야기를 흥미로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아무생각 없는 학생이었을 뿐이었다.
이런 내가 다윗의 이야기를 좋아하게 된 것은 중학교 때 부터였다. 분명 내 주변은 수많은 현자, 군자 들의 이야기로 가득하고 어떤 어려움, 고난이 닥쳐와도 이렇게만 살면 인생 남부끄럽지 않게 떳떳하게 혹은 더 나아가서 세상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정답들이 여기저기 사방천지에 널려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옆에 두고도 사는게 힘들다는 둥, 뭔가 잘못됐다는 둥 이런 저런 둥둥들로 자신들의 땅바닥을 띄우곤 했다. 이 아이들이 앞으로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더 이상의 길을 만들 철근은 모두 낭떠러지 아래로 내려간 것 같았다. 그저 둥둥 떠있기만 한 아이들. 나는 그것을 보고 참으로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의 가슴뛰는 일들은 모두 집을 헬륨가스 담긴 풍선으로 띄우거나, 등에 불을 키워 띄우거나, 소원을 적고 종이를 바람에 태워 날리는 것들이었는데, 이 아이들은 똑같이 띄워져있어도 가슴이 뛰는 거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얘들아, 난 여기있는데 자꾸 어디로 가는 거니.
부양과 부정의 차이는 없다. 겉보기가 비슷한 이둘은 내용물도 거진 다름이 없었다. 이 얘기는 아마 내가 한 몇가지의 실수들에 포함되지만, 그런 세세한 걸 따지고 싶진 않다. 사람은 외모를 보면 안되지만, 개념은 외모를 봐도 된다고 하면 되니까. 어떠한 귀찮은 문제도 조건을 달아버리면 그럴싸한 평범이 된다. 이걸 세간에서는 돌아간다고 한다. 그리고 옛날옛적에는 유능제강(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뜻)이라고 했다. 나는 공자의 일화도 떠올렸다.
공자는 자신의 제자의 어떠한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늙게 되면 단단했던 이는 사라지고 오직 잇몸만 남는다고 이 잇몸이 부드러운 것이 강하다는 증거라고. 기억이 잘 안나기에 대강 얘기를 해봤지만, 의미를 달리 한 부분은 없다고 생각한다. 부드러움은 강하다. 그가 한 얘기의 핵심이었다. 어떤 강직한 것들도 다 세월 앞에서는 무력하고 유한하고 가치를 잃는다는 것. 난 부양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비웃었던 애들도 이 이야기까지 듣게 된다면 조금은 인정할테니까. 하나보다 둘이 더 개연성이 있다는 건 불문율이니까. 아니면, 공자의 말이 다윗의 동화보다 훨씬 그럴싸 하니까 그럴수도 있겠다. 그런가. 다윗은 골리앗과 붙어봤지만, 공자는 골리앗을 상대해봤는거 같진 않은데. 이렇게 또 실수 한번.
